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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기즈키, 그의 여자 친구 나오코와 언제나 함께였다. 잘 어울리는 친구들끼리의 행복한 시간은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끝나 버리고 만다. 열아홉 살이 된 와타나베는 도쿄의 한 사립 대학에 진학하여 슬픈 기억이 남은 고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코 역시 도쿄로 올라와 둘은 슬픔을 공유한 사이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연민과 애정을 나눈다. 하지만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어느 날, 나오코는 자신이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는 편지를 보내고, 와타나베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게 된다. 한편 그는 나오코를 사랑하면서도 같은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에게도 애정을 느끼게 된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에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상실의 그림자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불안정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계를 이용한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성행위는 이유 모를 공허함으로부터 비롯된 혼돈, 그리고 거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상실은 사라지지 않고 변모한다. 상실의 정확한 세부는 사라지고 그때의 감정, 분위기, 풍경만이 남으며 기억의 세부는 기억의 변경에 묻힌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쾌한 감정으로 대체된 상실을 그저 느낄뿐이다. 가벼운 관계인 것 같지만 가볍다고만은 할 수 없는 감정이 깔려있다.

무슨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할까. 상실을 올바르게 이겨내고 해소할 방법에 대해 고려해야하는 걸까. 그런 방법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가 상실로 인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도 힘든 일이고, 인식하더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확실하게 결정하는 건 마찬가지로 어려울 것이다. 나도 상실을 다른 사람에게 해소하려 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정도가 엄청나게 심한 게 아니라면 괜찮지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크고 작은 상처에 휘둘리며 살고 있는 거 아닌가.

뭔가 여운이 남는데 이 여운을 말로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다. 나에게 인간은, 관계는, 사랑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것들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나도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완전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있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 감정의 원천이 약간은 히스테릭하다. 어떻게 해야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와타나베를 보며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