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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 문명이 발달한 가상의 새로운 미래 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나라의 통제 하에 각자 다른 역할과 계급을 할당받고, 맞는 역할에 따라 살 수 있도록 고의적인 결함이 있는 상태로 양산된다. 또한 국가시설에서 양육되어 계급에 따른 각종 세뇌와 암시교육을 받으며 사회에서의 훌륭한 부품으로 자랄 수 있도록 길러진다.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가는 문명인이 느끼는 행복은 그 사람이 맡은 사회적 역할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교육받은 것이거나, 소마라고 불리는 일종의 마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소마를 배급받고, 고독하거나 우울하다는 감정이 들때마다 소마를 복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정해진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정해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만약에 내가 약물과 세뇌를 통한 정량화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까? 행복이라는게 그저 호르몬 작용에 불과하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몇십년을 고생한다는 건 다 무의미한 짓이 아닐까? 우리가 인생에서 잠깐 찾아오는 쾌락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 쾌락이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세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가 우리의 눈에 모순적이고 기괴해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던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 대충 내 머릿속으로 정리한 내용은 이렇다. 인간이 통상적으로 인생에서 힘든 과정을 통해 얻어내는 쾌락은 그 전 과정에서의 고통과 대비되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매체를 통한 쾌락만을 추구할 경우, 쾌락에 익숙해져 둔감해지고 풍부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인간은 행복을 절대적인 수치에 따라 느끼는게 아니라, 지극히 상대적으로 느끼는 거기 때문에 힘들게 만드는 행복이 더 극적이라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사람들을 보고 ‘고생을 사서 하는 멍청이들’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근데 어차피 행복은 상대적인거니까, 내가 내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누가 뭐라해도 상관 없는거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뭐라고 할 자격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이상적인 세계라는 기준은 세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고, 지금의 내가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가치도 과거의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한 것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나는 절대로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