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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작은 마을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아이였다. 힘든 준비를 거쳐 경쟁이 치열한 신학교 시험에도 차석으로 합격했고, 그곳에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해나갔다. 하지만 하일러라는 친구를 만난 후, 그 친구와 시간을 보내느라 공부량이 줄어들었고,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하다 학교를 그만뒀다. 마을에서 기계공으로 취업하며 생활하려 했지만 고된 노동과 정신적 갈등속에 일주일을 보낸 후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는다.

한스는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교장의 강요에 압박받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도 뭔가를 배우고 탐구해나가는 재미를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본인을 칭찬해주는 말에 몰래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으며, 스스로 더 잘하려는 욕심도 조금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업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한스가 이런 결말을 맞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정도로 성실했다.

근데, 그가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교장이 말했던대로 하일러와 놀지 말아야 했나? 아니면 방학에 공부를 좀 덜 했어야 했나? 공부 대신에 하고싶은 걸 좀 했어야 했나? 아니면 신학교 자체를 가지 말아야 했을까? 내가 한스였어도 한스와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열심히 쉬지않고 공부해서 안정적인 인생을 산다는 길을 가기 위해선 다른 취미에 눈 돌릴 시간 없이 바쁘게 따라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느낌도 든다. 노력을 통해 성공한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된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스는 그냥 공부를 열심히 했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게 전부다. 그게 학생으로서의 한스에게 주어진 임무였고, 그걸 수행했을 뿐이다. 근데 왜 한스는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고 좌절해야 했을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한스도, 아버지도, 교장도 별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한스가 자신의 취미를 찾고 좀 더 놀 수 있도록 지도했다면, 그래서 한스가 공부에 부담을 덜 가질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게 한스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건 사실이다. 실제로 한스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추겼던 것도 맞으니까 말이다. 근데 그러면 결국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 어떻게 뭐라 말하기가 좀 어렵다.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꼬였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을만 한 행동만 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한스의 이야기가 나에게 하나하나 와닿았다. 내가 공부를 막 미칠정도로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한스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지 않나 싶었다. 특히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싫어하지는 않지만 힘든 감정을 나도 느껴봤던 것 같아서 많이 공감됐다. 공부라는 주제도 학생인 나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많이 생각해봐야하는 주제이다 보니 한스와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고있는데, 나도 언젠가는 한스처럼 회의감을 느끼고 괴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버틸 수가 없어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 압박에서 벗어날 방법을 조금은 생각해두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릴때는 달리더라도 말이다.

정말 인상깊은 책이었다. 거의 인생책중 하나로 꼽을만 한 정도인 것 같다.

데미안도 그렇고, 이 분의 글은 글에 묘하게 깊은 힘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