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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카스텐

초등학교 때 복면가왕에 나오는 ‘우리동네 음악대장’을 보고 국카스텐이라는 밴드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방송이 나왔던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영상을 우연히 다시 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빠지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를 카리스마 있게 부르는 모습이 멋져보였고, 밴드의 음악이 독특하고 재밌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독특한 음악 세계를 지키면서 신념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음악을 즐기는 그 밴드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 때 유튜브로 인터뷰나 노래 영상을 아주 여러 번 돌려봤더랬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 깊게 봤던 건 작사하는 방식에 대한 인터뷰를 모은 팬영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516wgkfuks

Q: 글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요?
하현우: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요. 사람들도 보고, 나무도 보고, 책 읽다가도 생각나는 내용이 있으면 그냥 적어 내려가는 거예요. 꿈을 꾸고 나서 떠오르는 잔상들도 적었죠.

Q: 그런 글들을 간추린 것이 1집의 가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하현우: 그렇죠. 생각나는 것을 공책에 두서없이 적고 나중에 그것들을 한 페이지에 요약해요. 한 번의 요약에 그치지 않고 계속 추리고, 또 추려서 응집된 가사를 만들어냈어요.


국카스텐에서 보컬과 작곡을 하시는 하현우님은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책의 내용이나 주변 사물을 통해서 영감을 얻어 음악을 만든다고 한다. 그 내용을 노트에 적고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표현하는 언어적 표현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추리며 가사를 적는다 한다.

그렇게 쓰인 가사에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응축된 생각과 힘이 담겨있다는 걸 노래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저 분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로알드 달 작가님의 책이나 어린이 명작, 청소년 문학에 속하는 책을 조금 더 많이 읽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특히 천명관, 김영하 작가님의 책과 민음사 고전 문학 전집을 좋아했고, 국부론, 총균쇠, 사피엔스 같은 두꺼운 책을 들고 씨름했던 기억도 있다.

책의 의미가 마음에 닿고 이해되기 시작하니까 읽는 게 더더욱 재밌어졌고, 국카스텐의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노래에 담긴 의미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처음엔 팬심으로 시작했지만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서 다른 여러 지식도 쌓고 다질 수 있었다.

그래서 돌아보면, 나는 국카스텐이라는 밴드와 하현우님의 철학에서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분야는 다르지만 항상 그 멋진 모습과 태도를 롤모델 삼아왔던 것 같다.

최근에 국카스텐의 싱글이 나와서 들어보니, 국카스텐을 좋아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여전히 노래는 잘 부르시고 악기의 소리와 조화도 너무나 좋다. 곧 3집이 나온다던데 기대해봐야겠다.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시는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이타카> 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의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 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나도 내가 가고 있는 길 그 자체를 즐기고 그 과정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국카스텐처럼, 자신의 색을 벗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고 싶다.

나에게 이타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