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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평전

테슬라는 자신만의 발명 방식을 가진 발명가였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마음속에 구축하고, 마음속에서 최대한으로 개선했다는 확신이 들 때 구현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실제 실행으로 옮기는 순간 세부 내용이나 결함 떄문에 집중력이 흩어지기 떄문에, 그 장치의 밑바탕이 되는 훌륭한 원리를 잃게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발명을 위해 그의 훌륭한 상상 능력을 적절히 활용했다.

테슬라는 발명의 발견에 있는 아이디어를 확인하면 기꺼이 그것을 글이나 특허로 만들려고 했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과시하는데 큰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발명을 이윤을 만이 남기는 제품으로 전환하는 일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기 발명의 바탕이 된 아이디어를 일반인이 파악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자기 발명의 가치를 확신시키려고 환상이라는 방법을 썼다.

이 책은 그가 인생에서 겪어온 일들과 그의 업적을 알아볼 수 있는 평전이었다. 읽으면서 교류 모터와 무선 전파에 대한 모든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설명이 상세하게 되어있어 핵심적인 부분을 알기는 좋았다. 먼저 테슬라의 인생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느낀 점을 적어보겠다.

소년 시절 (1856~1878)

  • 테슬라의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셨고, 가사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더 나은 장치를 만들어 썼다. 테슬라는 어머니를 본받아 어릴 때부터 물건을 만들었다.

  • 형이 죽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갔다. 형에게 모든 기대를 품었던 부모는, 다른 아들에 대한 기대를 품지 못했다. 테슬라는 “내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도 부모님께서는 상실감을 더 크게 느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을 거의 갖지 못한채 성장했다.”라고 스스로 말했다.

  • 책을 좋아했다. 걸음 수나 접시의 부피, 3의 배수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 테슬라는 상상력이 강했다. 미신, 이야기에 생생하게 몰입했고, 그 이미지들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워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상상력과 내면에 집중하며 정신을 훈련하고 욕망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했고, 의지력을 발달시키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환상을 제어하려 했다. 상상력을 잘 활용하여 모형이나 도면, 실험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서 다룰 수 있었다.

  • 어릴 때 키우던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정전기를 느끼곤 아버지께 그게 무엇이냐 여쭤봤다. 아버지는 비올 떄 치는 번개와 같은 것이라 답하셨고, 테슬라는 자연이 거대한 고양이일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터를 꿈꾸다 (1878~1886)

  • 태슬라는 대학에서 푀슐의 강의를 들으며 교류 모터에 대한 문제를 처음 직면했다. 푀슐은 수업에서 직류 발전기(다이너모)에 연결된 모터를 시연했고, 불꽃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류자의 브러시를 조정하였다 설명했다. 테슬라는 그 장치 없이 모터를 작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푀슐은 그것이 공상이라며 무시했지만 오히려 그의 야망에 불을 지폈다.

  • 직류 모터의 회전자가 도는 것은 회전자의 코일을 통해 흐르는 전류가 만드는 전자기장과 고정자의 코일로 만들어지는 전자기장이 반대되기 때문이다. 직류 모터에서는 정류자가 회전자를 계속 돌릴 수 있도록 회전자 코일을 지나는 전류의 흐름을 뒤집는 역할을 한다. 회전자의 일부가 고정자의 자기장 한쪽 면에서 다른 쪽 면으로 회전하는 순간에 정류자가 자동으로 전류의 방향을 뒤집어 회전자의 그 부분에 있는 전자기장이 고정자의 전자기장에 따라 밀려나는 것이다.

  • 그러므로 회전자의 자기장이 모터 속에서 규칙적으로 번갈아 바뀌니까 발전기에서 공급되는 교류로 이 자기장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테슬라는 생각했다. 교류를 쓰면 정류자가 회전자에 보내는 전류를 역전할 필요가 더는 없으니, 정류자에 일어나는 불꽃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은 모터를 개발할 상황이 되지 않아 대학 생활에 열중했다.

  • 대학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매일 새벽부터 미친듯이 공부했다.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성적에 비관적이셨다. 어느 날 자신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과음하며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3학년이 되어서는 대학에 아예 등록하지 않았고, 기술자로 일하는 길을 선택한다.

  • 의미 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테슬라에게 아버지는 또 꾸중하고, 낙담하였다. 상심한 탓인지 아버지는 곧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테슬라는 노름을 계속하려 한다. 어머니는 오히려 돈을 건네며 테슬라가 언젠간 노름을 이겨 낼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있다 테슬라는 프라하에서 대학을 다시 다니기로 결심한다.

  • 졸업 후 발명에 집중하기로 하여 여러 가지를 발명했지만, 그것들은 가능성만 보여주었고 돈벌이가 되지는 못했다. 좌절한 그는 신경쇠약을 겪으며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새 친구를 만나 운동을 하며 발명에 대한 욕망을 다시 불태운다.

  • 친구와 함꼐 공원을 산책하며 괴테의 파우스트에 있는 구절을 떠올린다. 물러가고 달려오는 해, 몸이 아니라 마음을 들어 올리는 보이지 않는 날개 등 괴테가 사용한 이미지를 통해 테슬라는 모터 속에 회전하는 자기장을 쓴다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 기계에서 정류자를 분리해 새로운 관점으로 연구하는 것을 계속해서 구상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다. 에디슨의 친구인 푸슈카시의 동생인 페렌츠가 부다페스트에 전화교환국을 세운다는 얘기를 듣고, 테슬라는 새 전화교환국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반복적인 제도와 계산이 많았기 때문에 지겨워했다.

  •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 테슬라는 에디슨 공장에서 일하면서 다이너모와 모터에 관한 공학 지식을 많이 습득했다. 제대로 작동하는 다이너모나 모터를 만들려면 회전자와 고정자의 코일에 대해 적절한 비율을 세심하게 생각해야 했다. 특정 전류의 출력을 확보하려면 코일의 길이와 지름, 전선의 치수와 감는 횟수, 기계의 회전 속도 등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테슬라는 에디슨 회사에서 다이너모와 모터의 설계에 관해 알려진 것을 많이 배웠으며, 이 지식 덕분에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모터를 실제 기계로 바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며 많은 기여를 했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지시로 여러 장치를 개발한 뒤 자기 노력에 대한 후한 보상을 기대했지만, 그 장치는 완성된 뒤 사용되지 않았다. 특히 테슬라가 주로 참여했던 아크 조명 장치의 계획이 포기되어 테슬라는 보상을 못 받고 투덜거리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모터를 팔다 (1886~1889)

  • 테슬라는 펙과 브라운의 도움을 받아 특허를 내고 연구소를 만든다. 테슬라는 펙과 브라운의 지원을 받으며열자기 발전기와 여러 교류로 모터의 고정자기속에 회전 자기장을 이용해 교류 모터를 만든다. 전류의 위상을 90도 어긋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원리라는 것을 이해한 테슬라는 회전자기장을 이용해 온전한 전기모터를 만들 수 있었다.

  • 전기 분야에서는 발전소의 직류 모터 사용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팩과 브라운은 대세와 반대로 교류 모터를 활용하자는 테슬라를 아직 의심했다. 테슬라는 펙과 브라운을 설득시키기 위해 콜럼버스의 달걀을 만들어 교류 모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일화를 통해 테슬라는 발명에 알맞는 환상을 심어 주는 어느 정도의 쇼맨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테슬라는 이 원리를 더욱 고도화한 다상 모터를 개발했다. 당시 교류 모터를 다루는 사람들은 더 있었지만, 그의 교류 모터는 다른 경쟁자들의 것과 달랐다. 테슬라는 첫째로 회전자에 전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맴돌이 전류를 유도해 회전자가 돌게 하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해 모터를 단순하게 유지했다. 둘째로 자연 속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현상인 회전자기장에 따라 모터를 개발했다. 셋째, 동시대인과 달리, 자기장을 만드는 데 기꺼이 여러 교류를 쓰려고 했다. 테슬라는 자신의 다상 모터와 송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 그러나 기술적인 면을 잘 아는 테슬라의 후원자 브라운은 배선 문제 때문에 활용이 제한될 것을 걱정했다. 테슬라의 다상 모터는 넷 또는 여섯 가닥의 전선으로 운전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모터를 기존 전기 장치에 간단히 연결할 수 없었다. 며칠 뒤 테슬라는 들어오는 교류를 두 분기회로로 나눈 뒤 저항코일, 축전기, 유도코일로 각 분기회로의 전류를 어긋나게 한 분상 모터를 만들어냈다. 브라운은 분상 모터를 다수 만들어 내는 테슬라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하지만 테슬라는 다상 모터만큼 효율적인 분상 모터를 더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슬라는 두 가닥 전선으로 작동하는 모터에 대한 지식을 일부러 숨겼다. 그것은 자신의 다상 모터가 단일 회로에서 작동할 수 있단느 것을 변호사 페이지가 알게 되면 다상 시스템의 발명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다상 장치를 도입하는 데에 네 가닥 전선으로 설비를 바꿔야한다는 리스크가 있어도 사회가 자신의 아름다운 다상 장치를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결국 브라운, 페이지과 대화를 나누며 여러 가닥의 전선으로 된 다상 모터와 두 가닥 전선의 분상 모터에 대한 특허를 모두 확보하게 되었다.

  • 테슬라는 브라운과 페이지의 독려를 받아 부지런히 일했다. 그는 이제 가능한 한 많은 분상 모터 디자인을 시험해서 특허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펙과 브라운은 테슬라의 발명으로 어떻게 돈을 만들지 궁리하기 시작헀다.

  • 펙과 브라운은 특허를 판매하는 전략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테슬라가 콜럼버스의 달걀로 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듯이, 펙과 브라운은 제품 제조사들의 주의를 끌고 상업적 잠재력을 확신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를 위해 전문 교수와 동료 기술자들에게 테슬라의 모터에 관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테슬라의 성과를 알렸다. 협회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면서 많은 이들을 설득시켰다. 교류 유도 모터의 이론은 페라리스가 더 일찍 제시했지만, 그는 교류 모터의 활용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활용 가능성과 장점을 알리고 최초의 실용적인 교류 유도 모터를 만들고 알린 것은 테슬라였다.

다양한 무선 전파 기술 (1889~1891)

  • 교류 모터를 발명한 이후로도 테슬라 코일, 진동 변압기, 피스톤이 왕복운동하는 것을 이용한 발진기, 무선 조명 등을 발명하며 테슬라는 유명인이 되었다. 자서전도 내고 명예 학위나 상도 휩쓸었다.

  • 하지만 1893년 공황 이후 불황이 된 경제에, 테슬라의 새로운 차세대 고주파 교류 기술을 지원해줄 투자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확산적으로 여러 방식을 시도하였으며 그 중 가장 나은 것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모든 방식을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이 방식이 항상 성공적이지 않았고, 거기에 테슬라의 연구소 건물에서 화재가 나 자료와 장비가 소실되면서 테슬라는 침체에 빠진다. 다시 우울증에 걸린다. 그래도 조금씩 발명을 시작하지만 이후 큰 성과를 내지 못한다.

  • 무선 전파 기술을 연구헀으며 원격 제어 어뢰정을 개발했다. 테슬라는 이 발명이 모든 나라의 전쟁 전략에 영향을 줄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발명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다. 이론상으로는 잘 동작하지만 전쟁중에는 제대로 조종되지 않을 우려가 있고, 테슬라가 지금껏 너무 자주 실패했기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 테슬라의 친구인 마틴은 사설에 이러한 글을 싣기도 했다.

    우리는 이 잡지나 다른 잡지의 칼럼에서뿐 아니라 책을 통해 전력을 기울여 테슬라 씨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 기록은 모든 사람 앞에 있다. 거기에는 테슬라 씨에세 ‘심각한 상처’를 입히려는 말이나 글줄이 없다. 그런데도 테슬라 씨는 우리가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으로 자신에게 해를 입히려고 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볼 떄 지난 1,2년 동안 테슬라 씨가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가능한 것의 범위를 넘어 아름답지만 완성되지 못한 발명품만 잔뜩 나열하는 것 같다. 테슬라 씨가 진정한 성취를 한 초기처럼 다정한 지지를 보낼 수 없게 된 우리는 최근에야 비로소 온건한 비판과 부드러운 농담으로 우리의 회의를 표명하면서 그가 약속한 바람직스럽거나 진기한 것을 완성하도록 독려했다. 우리는 이것이 진정한 우정이라고 믿는다.

  • 하지만 테슬라가 볼 때 건설적인 비판은 친구로부터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으며 이런 사정에 따라 테슬라와 마틴은 결별했다. 사설과 신문의 지면을 통해 마틴과 다투는 동안에도 테슬라는 좀 더 규모가 큰 두 번째 무선제어 어뢰정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특히 보안, 즉 자신이 만든 어뢰정이 자신의 송신기에서 나오는 신호에만 반응해야 한다는 점을 염려하게 되었다.

  • 테슬라는 발진기로 서로 다른 주파수를 여럿 만든 뒤 여러 회로와 동조시켜 두 주파수가 조합 수신되어야 제어장치가 작동하도록 했다. 이 기술을 쓰면 수십 가지 주파수를 생성해 다양하게 조합하여 어뢰정 여러 개를 개별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쇼맨십이 강한 테슬라는 그들이 질문을 외지면 어뢰정에서 불빛이나 폭약을 터뜨리며 대답할 것이라 하며 시연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어뢰정이 실질적인 관심을 받고 사용되진 않았다.

  • 1896년부터 1898년까지 X선과 무선제어 어뢰정을 만드는 동안에도 테슬라는 여전히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주기적인 생활을 하며 발명에 몰두했지만 자주 울적해지며 초췌한 모습이었다. 테슬라는 우울이 부분적으로 발명의 희열을 경험한 대가라고 이해했다.

  • 테슬라는 발명가가 거칠고 격정적이며 강렬한 성격이 있기에, 다른 사람이나 여자를 만나면 본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도 얘기했다. 그에게 발명은 엄격한 사고와 생생한 상상을 오가는 정신적인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 상당히 몰입하였으며 이에는 고독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테슬라는 자신이 아주 외롭다고 느꼈다. 테슬라는 끝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이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갑론을박이 있다고 한다.

무선 송전 (1892~1905)

  • 테슬라는 무선 송전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연구하였다. 테슬라는 지구와 대기를 통해 전류가 전달되는 법칙을 확인해야했다.

  • 1기압에서 대부분의 기체는 전기의 통행을 막아 절연체 기능을 한다. 하지만 크룩스는 크룩스관에 불이 켜지도록 하기 위해 관에서 대부분의 기체를 제거했다. 압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기체는 고압 전류가 지나갈 때 반짝거린다. 테슬라는 이를 유추해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의 전선을 거대한 크룩스관처럼,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 15미터의 유리관을 세워 귀로를 만들어 압력을 120mmHg으로 낮추어 전력을 옮기는 실험을 성공시켰다.

  • 따라서 테슬라가 생각하기에 무선 송전의 비밀은 전자기파(복사)가 아니라 진동하는 전류가 저압의 기체를 통해 전해질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송신, 수신기에 풍선을 달아 적절한 압력을 가진 고도에 올려 설치하는 방법을 구현하고 싶어했다.

  • 하지만 이 규모의 실험을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테슬라에게는 투자자가 없었기에 당시 뉴욕 시에서 부동산 배배로 거부가 된 애스터 가문의 애스터 4세 대령을 설득시켜 니콜라테슬라 회사의 대주주로 삼았다.

  •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는 헤르츠파가 에테르를 통해 움직이는 복사의 한 형태라고 보았는데, 테슬라의 발상은 그에 대비되는 행보였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그의 방식으로 이상적인 무선 송전 장치를 실현하기 위해 열중했다. 연구를 계속한 결과 정상파를 써서 지구를 통해 전력과 통신문을 보내는 것을 성공했다.

  • 그는 수신기에서 신호음이 들리는 것을 확인했으며 아이디어를 지지해 주는 증거를 열심히 포착했다. 하지만 그 것이 어디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어디에서 그러지 못하는지를 철저하게 증명하지 못했다. 큰 희망과 소량의 긍정적인 증거가 그의 마음의 환상을 만든 것이다.

  • 결국 테슬라가 꿈꿨던 무전 전력 전송 기술은 기술적 한계로 실패했다. 다른 투자자와 대중은 테슬라가 엉뚱한 망상을 한다며 많은 비판을 보냈다.

최후 (1905~1943)

  • 1930년대에 테슬라는 ‘나 자신이 유별나게 정확한 수용 장치라서, 내 아이디어는 항상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사실 만약 자신의 능력을 의심했다면 미쳤을 것이라고 1904년에 어느 기자에게 말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회전자기장 개념을 확인하고 그것을 교류 모터에 발현한 것과 똑같이 지구를 통해 송전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상상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작동시킬 수 없지 테슬라는 딜레마에 빠지며 신경쇠약에 걸렸다.

  • 그럼에도 그는 날개 없는 터빈 등, 입자선 무기 등을 구상하였다. 마땅한 큰 발명을 하지 못하는데 비해 발명에 돈을 많이 투자해야 했기에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불안과 강박도 조금 더 심해졌다. 식사 전 광택이 나도록 스푼을 닦아야 하는 결벽증이 있었고, 손수건은 하얀 비단으로 된 것만 썼다. 호텔방의 호실은 3의 배수여야만 했고, 비둘기에 집착해 말년 그의 호텔방에는 비둘기 새장이 가득했다고 한다. 1940년대에 들어 육체적으로 크게 노쇠하여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병으로 사망하였다.

테슬라의 영향

  • 테슬라가 교류전류에 이바지한 업적은 테슬라가 죽은 후에도 많은 기술자에게 인정받는다. 1956년에는 ‘테슬라’가 자기력선속 밀도를 측정하는 단위의 이름이 되었다.

  • 테슬라는 같은 시대를 산 에디슨이나 마르코니와 달리 20세기 후반의 역사책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특허를 얻고 홍보해 매각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으니 그를 ‘창업주’라고 할 큰 기업이 없기 떄문이다. 그리고 냉전 시대의 미국에서 그는 유용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테슬라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미국 경제를 바꾼 두 가지의 와해성 혁신을 소개했다. 1880년대 후반에 나온 그의 교류 모터는 전력 회사들이 교류를 통한 규모의 경제로 전기 비용을 내일 수 있게 해줬다. 테슬라의 교류 발명은 전기를 대량 생산 및 보급 가능한 사업으로 만든느 데 꼭 필요한 것 이었다.

  • 그가 무선 전파, 송전에 대해 연구했던 것은 라디오의 진화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는 송신기와 수신기를 접지하는 것의 중요성, 장치들을 동조시키기 위해 축전기와 유도자를 조정하는 것, 테슬라 코일 등 중요한 아이디어와 장치를 생각해 냈으며 이 모든 것을 라디오의 선구자들이 차용하고 채택했다. 오늘날의 라디오, 텔레비전, 무선 전화도 특정한 주파수에 공명하도록 회로를 동조시키는 테슬라의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변형해서 쓰고 있다.

느낀점

  • 과학에 대한 설명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맥락에 필요한 지식은 책에 친절하게 적혀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같은 진동수로 공명시켜 라디오를 송수신하는 무선 전파 기술을 보면서는 네트워크 수업으로 신호 대역과 전파를 공부했던 게 기억나서 더 흥미로웠다.

  • 테슬라의 업적은 구체적인 상상력과 쇼맨십을 통해 나왔다. 상상을 통해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실현하는 능력이 대단해보였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밀어붙여서 그걸 증명하는 모습이 멋졌다.

  • 명성과 업적을 끝까지 지속하진 못해도, 끝까지 이것저것 상상하고 시도해보며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인생을 사셨던 것 같다. 문득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내가 공부하고 있는 개발이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런 경험이 있어도 자신이 상상하고 믿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 자기가 흥미있는 분야에 계속 푹 빠져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내가 코딩을 통해 느꼈던 강렬한.. 또는 느슨하지만 깊었던 몰입의 순간들의 기억들 같은게 떠올랐다. 테슬라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발명을 놓지 않았던 것 처럼 나도 평생 뭔가에 깊게 몰입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